커브볼은 누가 발명했나 — 커밍스 vs 골드스미스, 신문 스크랩 한 장의 진실

윌리엄 아서 '캔디' 커밍스. 커브볼을 발명했다고 알려진 그 사람이야. 사진: 위키미디어 커먼즈
1939년 3월 28일, 미시간주 버클리. 여든두 살 노인의 심장이 멎어가고 있었어. 전해지는 보도에 따르면, 그 마지막 순간 그의 손에는 낡은 신문 스크랩 한 장이 쥐어져 있었대. 1870년 8월 17일 자 브루클린 이글. 그가 평생 품고 다닌 종이야.
그 종이가 증명하는 건 단 하나였어. "커브볼은 내가 발명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야구가 커브볼 발명자로 공식 기록한 사람은 그가 아니거든. 그리고 그 종이에는 사실… 아니다, 이건 조금 있다 이야기할게.
이 글은 야구에서 가장 오래 끈 '저작권 분쟁' 중 하나 — 커브볼 발명자 논쟁에 관한 거야. 링 한쪽엔 조개껍데기를 던지던 브루클린의 소년, 반대쪽엔 신문 스크랩을 쥔 노인. 볼 팩트체크답게 두 사람의 주장을 증거로 하나씩 검증해볼게. 미리 말해두면, 이 승부 — 깔끔하게 안 끝나.
ℹ️ 출처와 검증
이 글은 SABR(미국야구연구협회) 선수 전기 2종과 야구 명예의전당 기록 등을 직접 확인해 작성했어. 논쟁 중인 주장은 논쟁으로, 본인 회고는 회고로 구분해 표기했고, 글 끝에 출처를 명기했어.
소년과 조개껍데기 — 커밍스의 창조 설화
1863년 여름, 브루클린의 해변. 열네 살 윌리엄 아서 커밍스는 친구들과 조개껍데기 던지기를 하고 있었어. 납작한 껍데기가 바다 위로 좌우로 휘며 날아갔지. 소년은 훗날 이렇게 회고해 —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야구공을 저렇게 휘게 만들 수 있다면 친구들을 골탕 먹이기 딱 좋겠는데."
농담으로 시작한 연습이 4년을 갔어. 그리고 1867년 10월 7일, 브루클린 엑셀시어 소속으로 나선 하버드전. 커밍스는 그날을 이렇게 적었어.
"공이 날아가는 궤적을 지켜봤는데, 또렷하게 휘는 게 보였다. 평생 잊지 못할 환희가 밀려왔다."
커밍스가 어떤 투수였는지 알면 이 집착이 이해돼. 키 175cm에 몸무게 54kg. 힘으로 타자를 누를 수 있는 몸이 아니었거든. 그래서 힘 대신 회전을 택한 거야. 이 무기로 그는 1875년 한 해 35승을 거두는 스타가 됐고, "캔디(Candy)"라는 별명을 얻었어 — 당시 속어로 "그 분야 최고"라는 뜻이야.
여기까지가 야구사가 공인한 창조 설화야. 아름답지. 다만 한 가지만 기억해둬. 이 장면들의 출처는 전부 커밍스 본인이야. 이게 나중에 중요해지거든.
잠깐 — 커브볼은 진짜 휘긴 해?
검증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만 짚자. 공이 회전 때문에 휜다는 것 자체는 물리학이 보증해. 마그누스 효과 — 회전하는 공 주변의 공기 흐름이 비대칭이 되면서 공을 옆으로 밀어내는 현상이야. 심지어 뉴턴이 1672년에 케임브리지 테니스 코트에서 깎아 친 공이 휘는 걸 관찰하고 기록까지 남겼지.
그러니까 이 논쟁의 쟁점은 "휘느냐"가 아니야. "누가 먼저 그걸 무기로 만들었느냐"지. 재미있는 건, 두 주인공이 공을 던지던 시절엔 이 공에 이름조차 없었다는 거야. curveball이라는 단어가 인쇄물에 확인되는 건 1874~75년이 처음이거든.
도전자의 완벽한 증거 — 1870년 여름, 캐피톨라인 그라운즈
이제 반대편 주인공. 시카고 화이트스타킹스에서 112승을 거둔 실전파 투수 프레드 골드스미스는, 만년의 수십 년을 한 가지 주장에 바쳤어. 커브볼의 발명자는 커밍스가 아니라 나다.
그의 증거는 커밍스의 회고담과는 급이 달랐어. 날짜, 장소, 증인, 그리고 물증.
- 1870년 8월 16일, 브루클린 캐피톨라인 그라운즈에서 공개 시연을 했다
- 45피트 간격으로 말뚝을 세우고 분필로 선을 그은 뒤, 공이 가운데 말뚝을 돌아 나가게 던졌다
- 당대 가장 유명한 야구 기자 헨리 채드윅이 이튿날 브루클린 이글에 이를 보도했다
- 그 기사를 오려낸 신문 스크랩을 지금도 갖고 있다
들어봐, 이 정도면 거의 완벽한 증거 아니야? 본인 기억이 아니라 제3자의 보도, 그것도 종이로 남은. 승부가 골드스미스 쪽으로 기우는 것 같지.
이제 그 스크랩을 검증할 차례야.
스크랩 검증 — 3연타로 무너지는 물증
하나씩 확인해보자.
첫째, 브루클린 이글 아카이브에 그런 기사가 없어. 연구자들이 아카이브를 뒤졌는데 해당 기사가 발견되지 않았어. 스크랩의 출처도, 정확한 게재일도 확인이 안 돼.
둘째, 헨리 채드윅은 1870년에 이글 기자가 아니었어. 당시 그는 트리뷴에서 일하고 있었지. 증인의 소속부터 어긋나는 거야.
셋째, 이게 결정타인데 — 1856년 5월생인 골드스미스는 1870년 8월에 열네 살이었어. 그것도 브루클린이 아니라 코네티컷 뉴헤이븐에 사는 소년. 뉴헤이븐의 14세 소년이 브루클린 구장에서 기자들을 모아놓고 공개 시연을 했다는 이야기가 되는 거지.
2022년 커밍스 전기를 쓴 스티븐 카츠의 결론은 건조해. 그 스크랩은 "날조됐을 가능성이 높다(likely fabricated)." 평생의 물증이 검증 세 방에 무너져. 덤으로 하나 더 — 골드스미스가 증인으로 내세운 채드윅은 정작 커밍스 지지자였어.
그럼 커밍스의 승리인가 — 그쪽도 깨끗하진 않아
여기서 끝나면 팩트체크가 아니지. 이번엔 커밍스의 증거를 같은 잣대로 봐.
조개껍데기의 착상도, 하버드전의 환희도, 전부 본인 회고야. 1867년 10월 7일 그 경기에서 공이 정말 휘었다고 확인해주는 독립적인 당대 기록은 없어. 골드스미스의 스크랩을 무너뜨린 잣대를 들이대면, 커밍스의 창조 설화도 똑같이 흔들리는 거지.
게다가 발명을 주장한 사람이 둘만도 아니었어. 폰니 마틴은 1866년 아마추어 경기에서 이미 커브를 던졌다고 주장했고, 짐 크레이턴은 1861~62년에 손목 스냅을 쓴 투구를 하고 있었지(커밍스식 회전 그립과는 달랐지만). 그래서 역사가들은 여러 명이 비슷한 시기에 나란히 도달했을 가능성을 이야기해.
다만 커밍스에겐 골드스미스에게 없는 게 있었어. 당대의 증인들. 채드윅, 해리 라이트, 앨버트 스폴딩 — 초기 야구의 권위자들이 일찍부터 커밍스의 손을 들어줬고, 1908년경엔 "커브볼 = 커밍스"라는 평판이 사실상 굳었어.
두 주장을 한 표에 놓고 보면 이래.
| 검증 항목 | 캔디 커밍스 | 프레드 골드스미스 |
|---|---|---|
| 주장 시점 | 1863 착상 → 1867 첫 실전 | 1870 공개 시연 |
| 핵심 증거 | 본인 회고 | 신문 스크랩 (물증) |
| 증거의 약점 | 독립 기록 없음 | 아카이브 미발견·소속 불일치·당시 14세 |
| 당대 지지 | 채드윅·라이트·스폴딩 | 사실상 없음 |
| 공식 인정 | ✅ 명예의전당 (1939) | ❌ |
1939년 — 위원회가 정답을 정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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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스의 명예의 전당 명판. 1939년, 위원회가 논쟁에 마침표를 찍은 방식이었어. 사진: Penale52, CC BY-SA 3.0, 위키미디어 커먼즈
그리고 운명의 1939년이 와. 야구가 "1839년 더블데이 발명 100주년"을 기념해 쿠퍼스타운에 명예의전당을 개관한 해야. 그 100주년의 근거인 더블데이 신화가 1907년 위원회의 창작이라는 건 지난번에 다뤘지. 그러니까 1939년은 야구가 자기 역사의 '공식 정답'을 대량으로 확정하던 해였던 거야.
그해 5월 2일, 커밍스가 19세기 선수들과 함께 명예의전당에 헌액돼. 커브볼 발명자라는 공인과 함께. 수십 년을 끌어온 논쟁이 그렇게 '공식' 종결됐어.
골드스미스는 그 소식을 듣지 못했어. 5주 전인 3월 28일에 심장이 멈췄거든. 그의 부고 시점에 스포팅뉴스는 이렇게 정리했어 — "거의 모든 권위자들이 커브볼을 발견하고 완성한 공을 커밍스에게 돌린다."
다시, 그 손
그래서 처음의 장면으로 돌아가보자. 1939년 3월, 미시간. 낡은 스크랩을 쥔 손.
그 종이는 아마 진짜 1870년의 브루클린 이글이 아니었을 거야. 하지만 하나는 분명해. 그는 죽는 순간까지 믿었어. 자신이 커브볼의 발명자라고.
커브볼은 누가 발명했나. 공식 답은 커밍스야. 역사의 답은 — 아마 "한 명이 아니다" 쪽에 가까울 거고. 오늘 밤 야구 중계에서 커브가 뚝 떨어질 때 한 번 떠올려봐. 그 공 하나에 조개껍데기 소년의 회고와, 가짜일지 모를 신문 스크랩과, 개관 기념 명판이 전부 얹혀 있다는 걸.
위원회는 명판을 만들 수 있지만, 확실성까지 만들어주진 못하거든.
핵심 정리
- 커브볼 발명자의 공식 인정은 캔디 커밍스 — 1863년 조개껍데기 착상, 1867년 하버드전 첫 실전 사용 주장, 1939년 명예의전당 헌액
- 단 커밍스의 근거는 본인 회고 — 1867년 실전 사용을 확인해줄 독립 기록은 없음
- 경쟁자 골드스미스의 물증(1870년 이글 스크랩)은 아카이브 미발견·기자 소속 불일치·당시 14세로 날조 가능성이 높다고 판정됨
- 골드스미스 사망 5주 뒤 커밍스 헌액 — 더블데이 신화 100주년으로 명예의전당이 개관한 바로 그 1939년
- 역사학적으로는 단독 발명 확정 불가 — 마틴·크레이턴 등 주장자가 더 있었고 병렬 발전이 유력
자주 묻는 질문
Q. 그래서 커브볼 발명자는 공식적으로 누구야?
A. 캔디 커밍스야. 커브볼 발명자로 공인받으며 1939년 야구 명예의전당에 헌액됐고, SABR도 그를 "경기에서 커브를 처음 성공적으로 쓴 투수"로 기록해. 다만 이 공식 인정이 곧 역사적 확정이라는 뜻은 아니야 — 핵심 근거가 본인 회고거든.
Q. curveball이라는 단어는 언제 생겼어?
A. 인쇄물에서는 1874~75년에 처음 확인돼. 커밍스가 하버드전에서 던졌다고 주장한 1867년에는 이 공에 이름조차 없었던 셈이지.
Q. 커브볼은 어떤 원리로 휘어?
A. 마그누스 효과 — 회전하는 공 주변의 공기 흐름이 비대칭이 되면서 생기는 힘이야. 뉴턴이 1672년에 이미 관찰했고, 마그누스 효과 편에서 커브볼·감아차기까지 한 번에 정리했어.
Q. 더블데이 신화랑 무슨 관계야?
A. 같은 1939년에 만나. 명예의전당 개관 자체가 더블데이 신화의 "1839년 발명 100주년" 기념이었고, 커밍스 헌액도 그해에 이뤄졌어. 위원회가 야구사의 '공식 정답'을 정하던 해라는 점에서 두 이야기는 한 세트야.
Q. 다음 글은 언제?
A. 다음 볼 팩트체크 편은 비치볼 발명자는 존재하지 않았다야. 위키피디아에 20년 가까이 살아남았던 가짜 발명자 이야기 — 첫 글에서 예고했던 그 사건의 전말을 드디어 풀게.
출처
| # | 출처 | 확인 항목 |
|---|---|---|
| 1 | SABR Bio Project, "Candy Cummings" | 조개껍데기 착상·1867 하버드전 회고·체구·경력·1939 헌액·지지자 |
| 2 | SABR Bio Project, "Fred Goldsmith" | 1870 시연 주장·스크랩 검증(아카이브 미발견·채드윅 소속)·임종 보도 |
| 3 | Wikipedia, "Candy Cummings" | 논쟁 개요·Katz(2022) "likely fabricated" 판정 |
| 4 | Wikipedia, "Fred Goldsmith (baseball)" | 생몰·사망(1939-03-28)·스포팅뉴스 사설 |
| 5 | Wikipedia, "National Baseball Hall of Fame" | 1939-06-12 개관·"야구 100주년" 기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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