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국 — 송나라에는 공 차서 먹고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2026. 9. 4. 07:01·볼 역사

축국 — 송나라에는 공 차서 먹고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카이펑 박물관의 축국 디오라마. 발굴된 유물이 아니라 박물관이 만든 재현 모형이야. 사진: Windmemories, CC BY-SA 4.0, 위키미디어 커먼즈

송나라 황실 연회의 순서표에 축국(蹴鞠)이 들어 있었어. 잔치 한복판에서 사람들이 공을 찼다는 뜻이야.

그런데 공을 찬 사람들이 누구였냐면 — 공차기로 먹고사는 사람들이었어. 취미가 좋은 귀족이 아니라 직업 선수. 『동경몽화록』, 1147년 무렵의 기록에 그렇게 남아 있어.

 

이 선수들은 어디서 왔을까

직업 선수가 있다는 건 그 앞에 뭔가가 아주 오래 쌓였다는 뜻이지. 축국이라는 이름이 문헌에 처음 나오는 건 그보다 1,300년도 더 전이거든.

그러니까 이 글은 축국이 그 연회장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에 관한 이야기야. 그리고 한 가지를 같이 볼 거야 — 축국을 "축구의 조상"이라고 부르는 순간, 이 놀이가 혼자 해낸 일들이 안 보인다는 것. 연표부터 펼쳐볼게.

시기 축국에 일어난 일
기원전 3세기 (전국시대) 『전국책』·『사기』에 이름 등장 — 제나라 수도 임치
기원전 206~서기 220 (한) 군사훈련과 오락으로 융성, 전용 구장 국장(鞠場)
7~8세기 (당) 깃털 채운 공 → 2겹 공기 주입식 공
960~1279 (송) 직업 선수, 클럽 제운사·원사, 전국 대회
2004 FIFA가 "가장 이른 형태의 축구"로 공표

 

기원전 3세기 — 이름이 처음 적힌 자리

축국의 첫 기록은 전국시대, 기원전 3세기까지 올라가. 『전국책』과 『사기』 두 문헌이야.

그런데 등장하는 자리가 재미있어. 둘 다 제나라 수도 임치를 적은 대목에서 축국을 함께 적었거든. 그러니까 우리가 가진 가장 오래된 축국 기록은 경기 기록이 아니라 도시 이야기에 딸려 온 이름인 셈이야.

기원전 3세기가 어느 정도냐면, 이집트 타르칸의 리넨 공보다는 한참 뒤지만 1863년 런던의 그 술집보다는 2,000년 넘게 앞서 있어.

 

한나라 — 공놀이에 전용 구장이 생겼다

한대(기원전 206~서기 220) 에 축국은 두 얼굴을 갖게 돼. 하나는 오락, 하나는 군사훈련이야. 기병의 체력과 협동을 기르는 수단으로 쓰였고, 한 무제도 즐겼지.

군대가 공놀이를 훈련에 넣었다는 대조는 축구 금지령 700년 편에서 이미 했으니, 여기서는 다른 한 줄을 볼게.

한대에는 축국을 위한 전용 구장이 있었어. 국장(鞠場)이라고 불렀지.

이게 생각보다 큰 사실이야. 전용 구장이 있다는 건 공놀이가 아무 데서나 하는 일이 아니게 됐다는 뜻이거든. 자리를 따로 내주고, 그 자리에 이름을 붙였다는 거니까.

 

당나라 — 공 속을 비운 날

7~8세기, 당나라에서 이 놀이의 물건 자체가 바뀌어. 그전까지 축국 공은 깃털을 채운 공이었는데, 이때 2겹 구조의 공기 주입식 공으로 넘어가.

속을 채우던 공에서 속을 비우고 공기를 넣는 공으로. 지금 네가 발로 차는 공도 안이 비어 있잖아 — 축국이 그 구조에 도달한 시점이 7~8세기라는 이야기야.

볼픽 독자라면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아? 맞아, 고대 로마의 공들 중에도 동물 방광에 공기를 넣은 큰 공(follis)이 있었어. 그런데 두 기록을 잇는 증거는 없어. 로마의 방광 공과 당나라의 2겹 공은 서로를 몰랐을 가능성이 훨씬 크고, 여기서 할 수 있는 말은 "닮았다"까지야. 같은 아이디어가 다른 자리에서 따로 태어나는 일은 공의 역사에서 드물지 않거든.

이 무렵의 축국은 이미 바다를 건너기도 했어. 일본의 게마리(蹴鞠)가 아스카 시대에 중국에서 전래된 그 놀이야. 한자 표기까지 그대로 건너갔지.

 

송나라 — 제운사와 원사

그리고 송대(960~1279) 가 축국의 전성기야. 여기서 세 가지가 한꺼번에 나타나.

  • 직업 선수 — 축국으로 생계를 꾸리는 사람들
  • 전문 클럽 — 제운사(齊雲社), 원사(圓社)
  • 전국 대회 — 지역을 넘는 경기

옛 중국 목판 삽화에서 여러 사람이 마당에 둥글게 서서 공을 차는 장면

『수호전』 삽화의 축국 장면. 커먼즈 파일 설명은 이 그림을 "지방관의 종자들이 축국을 하는 장면"으로 적고 있어. 사진: 위키미디어 커먼즈

클럽 이름이 남아 있다는 게 특히 그래.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까지는 몰라도, 조직에 이름을 붙일 만큼 사람이 모였다는 건 확실하잖아.

맨 앞에서 본 『동경몽화록』의 그 연회가 이 시기 이야기야. 황실 잔치의 순서표에 오를 정도로 축국은 볼거리였고, 그걸 보여주는 직업이 따로 있었던 거지.

여기서 숫자 하나만 놓고 갈게. 송이 끝난 해는 1279년이야. 잉글랜드에서 축구협회(FA)가 만들어진 해는 1863년이고. 축국의 프로 클럽이 가장 늦게 잡아도 1279년 안쪽 이야기라는 뜻이니, 그 사이에 584년이 비어 있어.

 

2004년에 붙은 이름표

시간을 크게 건너뛰어서 2004년. FIFA가 축국을 "과학적 증거가 있는 가장 이른 형태의 축구"로 공표해. 축국의 첫 기록으로부터 2,200년이 넘게 지난 뒤에 붙은 이름표지.

그런데 이 이름표를 읽을 때 조심할 게 하나 있어. FIFA 박물관조차 축국이 근대 축구로 직접 이어졌다고는 말하지 않아.

"가장 이른 형태"와 "직계 조상"은 다른 말이거든. 앞의 것은 비슷한 것 중 제일 오래된 것을 가리키고, 뒤의 것은 선이 이어져 있다고 주장하는 말이야. 축국과 근대 축구 사이에 그 선을 그은 증거는 없어. 볼픽이 속설 팩트체크 사전에서 이 항목을 ❌가 아니라 ⚠️로 남겨둔 이유도 그거야. 틀린 말이라서가 아니라, 더 세게 말하면 틀려지기 때문이지.

이름표를 조금 걷어내고 보면 오히려 이야기가 커져. 축국은 축구가 되려다 만 놀이가 아니야. 축구가 되지 않고도 1,400년 넘게 굴러간 놀이고, 그 사이에 전용 구장과 직업 선수와 클럽을 스스로 만들어냈어.

 

사료가 답해주지 않는 칸

여기까지가 이 글이 답할 수 있는 전부야. 비워둬야 하는 칸도 적어둘게.

  • 경기 규칙 — 몇 명이 어떻게 차서 어떻게 이겼는지, 위 자료들은 말해주지 않아
  • 클럽의 시작 — 제운사와 원사가 언제 누구 손에 생겼는지 모르고
  • 놀이의 끝 — 송 이후 축국이 어떻게 됐는지도 이 연표는 답하지 않아
  • 임치 기록의 정체 — 두 문헌이 축국을 왜 그 자리에 적었는지도 마찬가지

특히 첫 칸이 아쉬워. 규칙을 모르면 축국이 축구를 얼마나 닮았는지 아무도 정확히 말할 수 없거든. 2004년의 이름표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진짜 이유이기도 하고.

 

정리 — 축국이 만든 것

기원전 3세기 임치의 기록에서 시작해, 한나라의 전용 구장을 지나, 당나라에서 공 속을 비우고, 송나라 황실 연회의 순서표까지. 첫 기록에서 송이 끝난 1279년까지만 세도 1,400년이 넘어. 그 시간 동안 이 놀이가 남긴 건 경기장 하나와 공 하나만이 아니었어.

이름표에는 "가장 이른 형태의 축구"라고 적혀 있지. 그런데 축국이 실제로 만들어낸 건 축구가 아니라 직업이었어.

다음 공의 세계사 편은 다시 한반도로 와. 말 위에서 채를 휘둘러 공을 치던 격구(擊毬) 이야기야. 세종이 무과 시험에 넣은 사연은 금지령 편에서 이미 했으니, 이번엔 고려 의종의 궁중과 단오, 그리고 말에서 내려온 장치기(봉희) 쪽으로 가볼게.

 

핵심 정리

  • 축국은 기원전 3세기 전국시대 문헌(『전국책』·『사기』)에 처음 등장 — 제나라 수도 임치
  • 한대에 군사훈련과 오락으로 융성하고 전용 구장 국장(鞠場)까지 생김
  • 7~8세기 당나라에서 깃털 공 → 2겹 공기 주입식 공으로 바뀜
  • 송대에 직업 선수·전문 클럽(제운사·원사)·전국 대회 등장, 『동경몽화록』에 황실 연회 기록
  • 2004년 FIFA 공표는 "가장 이른 형태" — 직계 조상 주장은 FIFA 박물관도 하지 않음

 

자주 묻는 질문

Q. 그럼 축구는 중국에서 시작된 거야?

A. 그렇게 말하면 지나쳐. FIFA가 인정한 건 "과학적 증거가 있는 가장 이른 형태의 축구"라는 표현이고, FIFA 박물관도 근대 축구로 직접 이어졌다고는 주장하지 않아. 근대 축구의 성문화는 1863년 런던에서 따로 일어난 일이야.

Q. 축국은 어떻게 하는 경기였어?

A.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 위에 정리한 자료들은 시기·공의 구조·조직은 알려주지만 인원과 득점 방식 같은 규칙은 담고 있지 않아. 그래서 이 글도 규칙은 쓰지 않았어.

Q. 공기 넣는 공을 중국이 제일 먼저 만든 거야?

A. 그 말은 이 글이 하지 않아. 고대 로마에도 동물 방광에 공기를 넣은 follis가 있었거든(로마의 공들 편). 다만 두 계통을 잇는 증거가 없어서, 닮았다는 관찰까지만 하는 게 맞아.

Q. 일본 게마리랑 같은 놀이야?

A. 뿌리는 이어져 있어. 게마리는 아스카 시대에 중국 축국에서 전래됐고 한자 표기(蹴鞠)까지 같아. 다만 일본에서는 승부를 덜어내는 방향으로 갔지.

Q. 다음 글은 언제?

A. 다음 편은 한국의 격구(擊毬)야. 말을 타고 채로 공을 치던 경기가 고려 궁중과 단오를 거쳐, 말에서 내려온 장치기(봉희) 로 민간에 퍼지는 이야기를 풀어볼게.

 

출처

# 출처 확인 항목
1 FIFA Museum — Cuju in China 전국시대 첫 기록·한대 군사훈련·당대 공기 주입식 공·FIFA 인정 범위
2 Wikipedia, "Cuju" 임치 기록, 국장(鞠場), 제운사·원사, 『동경몽화록』
3 Wikipedia, "The Football Association" 1863년 FA 창립 (비교용)
4 Wikipedia, "Kemari" 중국 축국의 일본 전래 (비교용)

태그: #축국 #공의세계사 #제운사 #원사 #동경몽화록 #송나라 #FIFA #공의역사 #중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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